조선시대의 신문고, 상언, 격쟁
- 박학다식
- 2021. 3. 12.
조선 시대 백성들이 억울함과 원통함을 호소할 수 있는 통로로 신문고와 상언, 격쟁이 있었습니다. 신문고는 태종이 중국의 제도를 본떠 만든 것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북을 쳐서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신문고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먼저 담당 관원에게 호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담당 사헌부를 찾아가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신문고를 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고을 수령, 관찰사, 사헌부의 순으로 호소한 후에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신문고를 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신문고를 치고자 하는 사람은 그것이 설치된 의금부의 당직청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신문고를 지키는 영사가 의금부 관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관리는 사유를 확인하여 역모에 관한 일이면 바로 신문고를 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의 득실이나 억울한 일에 대해서는 절차를 밟았다는 확인서를 조사한 다음에야 북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신문고를 치면 의금부의 관원이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보고된 사안에 대해 왕이 지시를 내리면 해당 관청에서는 5일 안에 처리해야 했습니다. 신문고를 친 사람의 억울함이 사실이면 이를 해결해 주었고, 거짓이면 엄한 벌을 내렸으며, 그 일과 관련된 담당 관원에게는 철저하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수령이나 관찰사 또는 서울의 해당 관원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가 신문고를 통해 왕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서 백성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거나 회유를 통해 신문고를 치지 못하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중죄인을 다스리는 의금부에 대한 백성들의 두려움도 신문고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문고는 결국 중종 이후 그 기능이 상실되어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그러나 상언과 격쟁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상언은 왕의 행차가 있을 때 그 앞에 나아가 글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은 왕이 있는 곳 근처에서 시끄럽게 징을 울려 왕의 이목을 끈 다음, 말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의 독특한 제도였습니다. 상언은 신문고에 비해 절차가 간편하여 일반 백성들이 이용하기 쉬운 것이었지만, 글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주로 양반층이 이용하였습니다. 반면 격쟁은 글을 몰라도 되기 때문에 평민들이 많이 이용하였으나, 격쟁을 하는 사람은 먼저 형조의 취조를 받아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 세도정치로 인해 정치 기강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에게 대한 지배층의 억압과 수탈이 심해지면서 상언과 격쟁에 대한 제약도 강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어려움을 풀 길이 막힌 백성들은 지방관이나 악덕 지주들의 죄상을 폭로하기 위해 집단으로 상급 기관에 항의하거나,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여 대항하기도 했습니다.
본문 속 단어
▷ 원통 : 분하고 억울한 것입니다.
▷ 호소 : 억울하거나 딱한 사정을 남에게 간곡히 알리는 것입니다.
▷ 관원 : 벼슬아치입니다.
▷ 벼슬아치 : 관청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보는 사람입니다.
▷ 사헌부 : 조선 시대에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던 관청입니다. 오늘날의 정부 기구인 감사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고을 수령 : 사또, 원님
▷ 관찰사 : 조선 시대의 지방 장관으로서 현재의 도지사에 해당합니다.
▷ 의금부 : 중대한 범죄를 처벌하는 관청으로, 신문도고 관리했습니다.
▷ 당직청 : 의금부에 속하였던 부서로, 신문고를 관리했습니다.
▷ 영사 : 하급 관리입니다.
▷ 역모 : 반역을 꾀하는 것입니다.
▷ 득실 : 이익과 손해입니다.
▷ 사안 : 법률이나 규정 따위에서 문제가 되는 일입니다.
▷ 안력 : 권력이나 세력에 의하여 타인을 자기 의지에 따르게 하는 힘입니다.
▷ 회유 : 어루만지고 잘 달래어 시키는 말을 듣도록 하는 것입니다.
▷ 중죄인 :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 유명무실 : 이름만 그럴듯하고 실속은 없는 것입니다.
▷ 행차 : 웃어른이 차리고 나서서 길을 가는 것입니다.
▷ 이목 : 귀나 눈을 아울로 이르는 말로, 여기에서는 주의나 관심을 뜻합니다.
▷ 형조 : 범죄와 법률에 관한 일을 맡아 했던 부서로, 현재의 법무부에 해당합니다.
▷ 취조 : 범죄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혐의자나 죄인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 기강 : 근무 자세, 근무 태도입니다.
▷ 문란 : 도덕, 질서, 규범 따위가 어지러운 것입니다.
▷ 악덕 : 도덕에 어긋나는 나쁜 마음이나 나쁜 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