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코 브라헤(Tycho Brage)

르네상스 시대의 천문학자라고 하면, 지동설을 처음으로 책으로 펴낸 코페르니쿠스, 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유명한 갈릴레오,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임을 증명한 케플러 등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르네상스의 과학자들 중에는 우리가 잘 배우지 않은 인물이 한 명 더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티코 브라헤(Tycho Brahe)입니다. 

 

 

망원경이 없어서 별을 관측하는 일을 맨눈으로 해야만 했던 시절에 티코는 영웅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티코는 비록 코는 없었으나(티코는 젊은 날 파티에서 '파르스베르'라는 수학자와 수학에 대해 논의하다가 뜻이 맞지 않아, 결투까지 벌이게 되어 코를 베이게 됩니다.) 천문을 관측하기 위한 타고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력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맨눈으로 정확히 관측하기 힘든 별의 움직임을 티코는 정확하게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는 시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코는 좋은 시력을 가지고 날마다 하늘의 별을 관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백 년에 한 번 보이는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초신성은 수명이 다한 별이 폭발하여 지나치게 큰 빛을 발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 빛은 낮에도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혜성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겠지만 하늘에 관심이 있었던 티코의 눈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티코는 이 별을 485일 동안이나 관측하여 1573년 그 기록을 정리하여 <신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티코 브라헤는 한순간에 이름 있는 천문학자가 됩니다. 그리고 덴마크 왕 프레데릭 2세로부터 신임을 얻어 왕족처럼 벤 섬이라는 영지까지 받게 됩니다. 

 

티코는 어떻게 초신성을 관찰한 기록을 가지고 이름을 알리고, 영지까지 받게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실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 때문입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으로 인해, 우주는 질서를 가지고 있고, 신이 창조한 세계이기 때문에 하늘의 별이 새롭게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티코가 초신성을 관측하고 새로운 별의 탄생이라고 책을 쓴것입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는 큰 파장을 일으킨 유명인사가 된 것입니다. 분명 초신성이라는 것은 낮에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현상이면서, 티코가 관찰한 것과 같이 한순간이 아니라 긴 시간 빛나는 것인데도 그동안 유럽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갇혀 본 것도 못 봤다고 생각하고 일어난 일도 아무것도 아닌 양 행동했던 것입니다. 1054년에 일어난 초신성 현상에 대해서도 중국과 고려, 일본은 명확히 기록하고 있는데도 유럽 국가들 중에서 이런 초신성 현상에 대해서 기록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천문학자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 티코 브라헤는 자신의 성 안에 정밀한 측정 장치를 설치하고, 온도와 바람의 변화까지 고려해 정밀한 천체 관측을 하며 일생을 완벽한 자료를 만드는 것에 바쳤습니다. 

 

 

본문 속 단어

▷ 천문학 : 우주 전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동설 :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설

 관측 : 관찰하여 측정하는 일입니다. 

 신임 : 일을 맡길 만큼 믿음직하게 여겨지는 마음입니다. 

 영지 : 왕이 주는 땅입니다. 

 사상 : 어떠한 것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생각입니다. 

 파장 : 충격적인 일이 끼치는 영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정밀한 :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여 빈틈이 없는 것입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폴란드 왕국의 프로이센 지방 토룬 시에서, 독일계 상인 아버지 슬하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도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전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쿠페르니쿠스는 왜 행성이 천체상을 역행하는가 등의 의문에서 출발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지동설에 도달했습니다. 지동설 주장은 440년이 지난 뒤에야 로마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i Galilei)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로서 진자의 등시성 및 관성법칙을 발견하였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지지 등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지동설을 확립하려고 쓴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는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이단 행위로 재판받았습니다. 

 

 

케플러(Kepler, Johannes)

케플러는 독일의 천문학자입니다. 슈투트가르트 부근의 바일에서 출생하여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배웠는데, 이때 지동설을 접했습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였기 때문에 신교가 박해를 당하게 되자 프라하로 가서 티코 브라헤의 조수가 되었습니다. 티코가 죽은 그가 남긴 화성 관측 결과를 정리하여,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하는 타원 궤도를 돈다고 하는 소위 '케플러의 법칙' '행성운동' 1법칙 면적 속도가 보존된다고 하는 '행성운동' 2법칙에 이르렀고 이것은 1609 <() 천문학> 발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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